성경 단어 나눔

가말리엘 (Gamaliel)

초대교회시대에 일반 유대백성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애정과 존경을 받던 율법학자. 신구약 중간기에 활약했던 저명한 진보적 유대교 랍비 힐렐의 손자이자 그의 문하생이었다. 가말리엘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경건한 바리새인으로, 율법문제에 대한 고문격으로 로마식민지 유대의 자치기구 산헤드린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당시 백성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던 지도자였다. 후대의 유대교 랍비들은 그의 경건과 학문을 칭송하며 그를 '라반'('우리의 주, 우리의 스승'이라는 뜻)이라는 존경과 애정이 가득한 칭호로 불렀는데, 이는 후에 바리새인 법정의 지도자를 칭하는 공식적인 호칭이 되었다. 다소출신의 바리새인이었던 사울, 즉 사도 바울도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다(22:3).

가말리엘은 율법에 대해 포용력있는 해석을 하였으며, 이를 통해 자유주의적 바리새주의를 세우는데 일조를 하였다. 또한 그는 학식과 지혜, 중용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이를 통해 많은 백성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관용적인 태도는, 사도들이 산헤드린의 엄중한 경고를 무시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계속 전파함으로써 극도로 흥분한 산헤드린의 분위기를 진정시키며 중재하는데서 잘 드러나고 있다(행 5:34-40). 이 때 취한 그의 행동은 그의 공적인 이미지와도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가말리엘이 산헤드린 재판에서 자신의 명성에 피해를 줄 수도 있는 불필요한 오해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과감한 태도로 사도들의 생명을 보호한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었던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정치적인 대립이 그 실제 이유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사도들이 전파하는 부활신앙에 대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종교적 신념의 차이가 그 밑바닥 동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직도 많은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해야하는 사도들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심지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산헤드린 내에서도 정교하고 치밀하게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사실 여기 나타난 가말리엘의 '무간섭 방임주의적' 태도와 신앙은 사실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단기적 시각으로 바라볼 땐 사단의 악한 계획이 오히려 승리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상되고 행해진 선한 계획과 사역들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말리엘이 주장한 원리는 무엇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를 가려내는 믿을 만한 지표는 아니다.

어떤 전승에 의해면 가말리엘이 말년에 기독교인이 되었다고도 한다. 유명한 역사가 요세푸스는 가말리엘의 아들이며 예루살렘의 귀족이었던 시몬을 그의 기록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그 집안이 예루살렘에서 누렸던 명성과 권력이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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