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단어 나눔

바울과 로마 교회 (Paul and the Church in Rome)

로마 교회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이 직접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훨씬 이전부터 로마에 먼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롬1장 참조). 아마도 오순절 성령강림 때 예루살렘을 방문중이던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들', 즉 로마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로마로 돌아가 그 곳에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처음 로마에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행2:10 참조), 또한 얼마 후 예루살렘의 핍박을 피해 흩어진 수많은 무명의 그리스도인 전도자들이 여행자로 로마를 방문하여 복음 증거의 사역을 남몰래 감당하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로마에 거주하던 유대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선교활동은 일부 유대인들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보이며, 결과적으로 심각한 분쟁과 혼란을 초래하여, 소동 끝에 결국 AD 49년 글라우디오 황제에 의해 유대인의 로마 추방령이 내려지게 된다(AD 54년 글라우디오 사후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음).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 공동체와 처음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의 만남이었는데(행18:2), 이들은 바로 이 추방 명령으로 로마를 강제로 떠난 로마거주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은 추방 후 고린도에 내려와 당시 고린도 복음화를 위해 애쓰고 있던 사도 바울을 만나 천막 만드는 일과 복음전하는 일을 함께 하며 바울의 선교에 동참하였다.

로마의 유대인 사회는 극소수의 부유층, 지식층 외에는 대체로 가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로 다른 몇 개의 그룹이 도시의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으며, 각 그룹마다 회당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지도자가 있었다(행28:17 참조). 그러나 어느 한 집단도 로마의 유대인 공동체 전체를 다스리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에 있던 유대인들은 대부분 자치적인 성격이 강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정도 자유롭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당시 로마의 유대인 인구는 약 5만을 헤아렸다고 하는데, 이들 사이에 흩어져있던 이름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전도활동을 통해 많은 수의 로마인들, 특이 부녀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로마 귀족층 남자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했고, 이것은 유대인과 로마인 사이의 중요한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방인 선교사역에서 로마가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와 전략적 의미를 잘 알고있던 사도 바울은 선교여행 중 이미 자생적으로 커나가는 로마 교회에 서신을 보내 이들을 격려하는 동시에 복음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문서화함으로써, 당시 로마 교회뿐만 아니라 후세 교회들이 복음을 지켜가는데 필요한 매우 중요하고 귀중한 도구를 제공하였다.

2년이 넘는 로마 투옥 기간 중, 사도 바울은 자신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일 이외에도 유명한 옥중서신들(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을 씀으로써 수신 교회들뿐만 아니라 후세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귀중한 영적 자산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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