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단어 나눔

빌립보 (Philippi)

유명한 로마의 군사/상업용 도로망 '비아 에그나티아'(Egnatian Way)의 주변 비옥한 평원 위에 에 건설된 동부 마게도냐의 도시이다. 이곳은 '비아 에그나티아' 도로망의 동쪽 끝에 위치했지만, 서쪽으로 제국의 중심 이탈리아로 가는 아드리아해 항구 두라키움까지 연결되어 있는 이 지역 교통의 요지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과 같은 곳이었다.

사실 마게도냐 지역의 공식적인 수도는 데살로니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빌립보는 이 지역의 '첫 성'으로 꼽혔다(행16:12). 빌립보는 주전 42년 빌립보 전투 승리를 계기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 아구스도에 의해 로마의 식민지로 승격된 이후 황제가 파견한 집정관이 직접 통치하는 일종의 황제 직할도시였다. 로마제국의 정식 식민지로서 빌립보 시민들은 자동적으로 로마 시민이 되는 특혜를 누렸으며, 따라서 이들 중 대부분은 로마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로마 시민이 누리는 모든 권리와 특권을 자동적으로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빌립보에 살던 사람들 모두가 정식 빌립보 시민은 아니었다. 사도 바울은 나중에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3:20)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편지를 받아 본 대부분의 빌립보 교인들은 비록 자신들이 최고의 도시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 도시 시민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울이 다닌 대부분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빌립보는 상업과 함께 농업이 이 도시의 주요산업이었으며, 따라서 다산과 풍요의 여신 다이아나 숭배가 만연되어있는 곳이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다른 헬라도시들에 비해 여자들이 더욱 두드러진 활동을 했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비록 전통적인 팔레스틴 예절법에는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바울은 강가에서 여자들로 이루어진 집단을 가르치는 것으로 복음전파를 시작했으며, 이것을 통해 다른 도시와는 달리 여자 경제인으로 자주장사였던 루디아가 이 지역 첫 복음의 열매로 탄생하였다.

빌립보는 매우 로마화된 도시로 로마법을 본 뜬 자신들의 헌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로마법의 적용과 보호를 받았다. 시민들은 로마법이 보장하는 모든 권리를 누렸으며, 무거운 공물납부의 의무 또한 면제를 받았다. 로마시민은 항소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재판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태형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었고, 설혹 실형이 선고되더라도 선고에 불복하고 황제에게 직접 항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과 비시민들은 빌립보에 거주한다고 해서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로마 시민이 아닌 외국인과 하층계급 사람들은 송사를 당하면 정식 재판에 앞서 증거확보의 수단으로 옷이 벗겨진 채 참혹하게 매를 맞았으며(행16:22), 이를 위해 로마에서 파견된 행정장관의 수행원들은 막대기를 다발로 들고 다녔다. 바울과 실라는 로마의 시민으로서 로마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었으나(행16:37) 아마도 그들의 얼굴생김새와 초라한 행색 등으로 떠돌이 외국인 정도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 지역에는 로마의 직업군인들이 퇴역 후 많이 정착해서 살고있었는데, 감옥을 지키는 간수의 직책은 대개 이런 퇴역군인의 몫이었다. 따라서 이 지역의 두 번째 개종자였던 간수는 아마도 퇴역한 로마의 군인이었을 것이다. 당시 이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학교육기관이 소재하고 있었는데, 행16:10에 기록된 '우리'라는 표현과 함께 미루어 볼 때 이곳 출신인 누가가 바울의 전도팀과 함께 이 지역 복음전파에 일익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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