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미 익숙한 말씀을, 숨을 고르고 천천히 내쉬며 한 글자, 한 단어마다 마치 수를 놓듯이 마음에 한땀씩 새겨 본다. 예수님의 마음.. 이내 예수님 말고도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여러가지 생각의 조각들과 못난 자아상이 마음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잔잔하지만 뜨거운 무언가가 마음과 눈 언저리에 맴돈다.
빌립보서 2장 5절의 “마음”이라는 단어가 “attitude”로 번역(NASB, NIV)되어 있음을 읽고, 음악칼럼을 위해 예수님의 attitude로 살아가는 분이 누가 계실까 생각해 보았다. 코스타 사역을 통해 그동안 안면이 있어왔던 김동민 간사님이 떠올랐다. 김동민 간사님은 몇년 전부터 뉴욕에서 수준 높은 연주를 무료로 연주하는 New York Classical Players(NYCP, www.newyorkclassicalplayers.org)의 지휘자로 이미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계신 분이다. 코스타에서 빨간 조끼를 입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시며, 늘 하나님 말씀에 자신의 삶을 담그시는 겸손한 모습만 보아왔었는데, NYCP에 대해 알아보면서 휘튼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로서의 모습과 그동안 쌓아오신 성실한 간사님의 경력을 읽으면서 이번 음악칼럼을 위해 간사님을 생각나게 하신 분이 내가 아닌 성령님임을 다시 고백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기주의로 팽배하다. 특히나, 누구든지 자신의 탤런트가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그 값어치를 돌려받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여겨지는 음악세계에서 김동민 간사님은 NYCP를 통해 최고의 연주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Free Admission으로 청중에게 다가오셨고, 이러한 모습은 분명 현 세대와 역행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대중을 섬기는 모습으로 NYCP를 시작하게 되신 동기가 무엇인지 간사님의 NYCP에 대한 소개와 함께 담아보았다.
김동민 간사님: Admission이 없기 때문에 자주 듣게되는 오해가 New York Classical Players는 자선단체가 아닌가라는 것인데, 저희는 양로원이나 공공기관을 다니며 연주하는 자선단체가 아니구요. Volunteer의 성격이 아닌, 전문성있는 좋은 연주자들과 유명 초청 soloist들에게 원래 받으셔야하는 금액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보상드리면서, 대중들에겐 잘 준비된 곡을 무료로 들려 드리는 Professional Chamber Orchestra입니다. 맨 처음 1년간의 준비 기간이 있었고, 현재season 3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New York을 중심으로 Bronx, Manhattan, Queens, Long Island, Brooklyn에서 연주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인디애나 블루밍턴에서 캠퍼스 모임을 섬기면서 장(長)학생으로 공부했습니다 ^^. 오랜 기간동안 시골에 있었기 때문에 coursework만 마치면 그곳을 탈출하고 싶었지요. 그래서, 정말 coursework이 끝나자마자 유홀에 짐을 싣고 제 와이프인 승혜 자매와 함께 그냥 무작정 뉴욕으로 떠나왔습니다.
지혜경: 왠지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채 익숙한 곳을 믿음으로 떠났던 아브라함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
김동민 간사님: 아, 그럴수도 있겠네요 ^^. 어쩌면, 하나님께서 저의 그런 막연한 호기심과 벗어나고 싶은 심정을 사용하신 것 같기도 해요. 처음엔 NYCP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구요. 그냥 막연하게 뉴욕에 머물게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은 해 봤었지요.
블루밍턴에서 떠나오기 한두달 전에 공립도서관을 간 적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homeless로 보이는, 큰 쓰레기 봉투에 여러가지 물건을 넣어 질질 끌고 들어오시는 흑인 할아버지 한분을 보았지요. 그분은 앉아서 음악을 약 두시간 동안 심취해서 듣고 계셨는데,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을 연속으로 오셔서 들으시더라구요. 그때엔 그저 신기하다고만 생각하고 지났었는데, 어느 순간 그 할아버지가 떠올랐어요. 할아버지께서 그 시간에 길바닥의 신문이나 음료캔 등을 주웠더라면 햄버거 하나라도 더 사드실 수 있었을텐데, 왜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을 수 있는 생계를 포기하고 그 시간에 음악을 듣고 계셨을까... 그분에게 음악이란 어떤 의미일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오랜 시간 음악을 해 온 제가 그 할아버지께 정작 해 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나중에 공부를 마치고, 좋은 경력을 쌓아 잘 되어 음악회를 하게되면 그 음악회은 표값을 지불할 수 있는 극히 제한된 사람들만을 위한 음악회가 될것이고, 이러한 할아버지 같은 분과 저는 여전히 상관없는 사람이겠구나...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지금껏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해 온 음악을 통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지 생각하게 되는 turning point가 되었어요.
그동안 교회에서 음악으로 열심히 섬겨왔었는데, 한편으로는 음악이라는 달란트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선용하는 모습으로만 머물고 있는 어떠한 틀에 갇혀있는 저를 보게 된 거지요.
이러면 않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살아오면서 위로 향하여 가고, 더 좋은 음악을 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밑으로 가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지요.
현재 머무는 곳에, 나의 나된 모습으로 이르기까지.. 세상에는 사람마다 참으로 다양한 삶의 길을 걷는다. 때론 삶이, 살아있음 만으로도 참 감사하다고 느낄만큼 가슴 깊이 들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여유롭게 걷는 저녁 나절의 산책길 같을 때도 있고, 조금은 버겁게 숨을 고르며 걸어야 하는 오르막길도 있고, 또 때로는 어느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여야 할지 방향조차 가늠이 안될 정도로 자욱한 안개 속을 걸을 때도 있다. 가끔은 그런 경험을 한다. 달갑지 않은 텍사스 서부의 전형적인 dust storm이 기승을 부리는 날에 길을 걷다가, 뿌연 흙먼지와 함께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간신히 내 몸을 추스리며 힘겹게 걷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내 몸을 가뿐히 앞으로 떠밀어 나아가게 하는 그런 경험 말이다. 그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무리 막막한 삶의 길을 걸어도 하나님께서 그 길을 가게끔 하시는 원동력이 되어주실 때 전혀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늘 기억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단 한번의 삶을 살며 가장 행복하고 의미있는 일생을 보낼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에게 있다.
김동민 간사님께 결코 쉽지만은 않으셨을 것 같은 NYCP 시작의 첫 걸음을 내딛기까지, 그리고 지금의 Season 3로 이어지기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이야기를 여쭤봤다.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주셨지만, 그동안의 시간을 지나오시면서 감히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간사님과 하나님만이 친밀하게 알 수 있는 삶의 이야기들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김동민 간사님: 원래 NYCP를 할 목적으로 뉴욕에 온 거는 아니었어요. 이곳에 머물면서 박사과정을 마칠 계획이었지만, 방향이 바뀌어 NYCP를 하게 될 pressure가 생기게 되었어요. 어느 날, 한 목사님께서 “정말 너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일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라면 무조건 하라”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것이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일이라면 길을 열어주실거라구요.
그 말씀을 들은 후, 전 자다가 눈을 딱 뜨면 가슴이 뛰고 뜨거워져서 다시 잠을 잘 이루지 못했어요. 결혼 전 연애할 때, 당시 한국에 있던 와이프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슴 설레이며 이메일을 하던 그때와 같은 설레임이라고 할까요? 아마도 제 평생에 이런 가슴 떨림이 몇번이나 있을까요..
공부와 NYCP를 병행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기도하며 와이프와 상의를 했어요. 부모님께 학위를 드리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결심하고 말씀 드렸더니 오히려 제 결정을 respect해 주시면서 큰 격려와 축복을 해 주셔서 집중하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지요. 그동안 여러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 경험들이 있었기에 큰 오케스트라의 초청도 많이 받고, 다른 fellowship 기회들도 많았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모든 기회들이 딱 멈추더라구요.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정황들 가운데서 NYCP에만 올인할 수 있도록 모든 상황들을 만들어 주심을 보면서 ‘아, 하나님께서도 이 일을 원하시는구나’ 느끼게 되었어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시작과 상황들을 인도해 주시는 가운데서도 시작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painful했지요 ^^… 모든 것이 zero에서 시작했거든요.
일단 좋은 뮤지션들을 찾고 팀으로 묶는 것이 쉽지 않았구요. 제일 큰 문제는 funding이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지금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지금 다시 그 상황으로 돌려놓으시고 또 시작하라고 하시면 못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오게된 건, 분명히 하나님께서 강하게 이끌어가심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한 에피소드를 소개해 드리자면, 2011년 11월 경, 비올라의 요요마라고 불리우는Kim Kashkashian의 초청 연주가 있었어요. 연주 일주일 전이었는데 NYCP 통장에 천불이 채 들어있지 않았었지요. 이미 모든 초청 이메일이 나간 상태였고, 제 아내는 차마 제게 말은 못하고 ‘이번 연주가 정말 끝이구나.. 그동안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고 하더라구요. 저희 교회에 NYCP의 첫 연주부터 계속 들어오시던 장로님 한분이 계신데, 장로님께서 음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도와주고픈 마음이 있으시다고 연주 바로 일주일 전에 편지를 보내셨어요. 그렇게 머릿속에서만 생각이 맴돌다가 어깨를 지나 팔을 타고 펜끝으로 내려오기까지 일년이 걸렸다고 말씀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해서 그 때의 연주를 해 낼 수 있었습니다.
2011년 11월 29일 Church of the Heavenly Rest에서 열렸던 그때의 연주를 잠시 소개하고 싶다.
Lachrymae Op. 48a by Benjamin Britten
New York Classical Players
Dongmin Kim, conductor
Kim Kashkashian, viola
거저 들을 수 있는 연주라는 것에서 느껴지는 내 마음 안에서의 가벼움과는 달리, 단 한번의 연주를 하기 위해서만도 상상 외로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된 나는 굉장히 놀랐다. 그렇게 연주 때마다 줄타기 식으로 펀드를 만들어야 했던 경험들과 그보다 주변 분들이 현실을 바라보고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실 때 정말 힘들었다는 간사님의 말씀 속에 보이신 잠깐의 침묵이 왠지 지나온 모든 시간과 마음의 무게들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함께 낮아지는 마음을 통하여 때마다 채우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NYCP의 존재 뒤에 보이지않는 여러 모습으로 섬기며 수고하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 인해 이 일이 혼자 걷는 것이 아닌 함께 가는 길이라고 말씀 하시며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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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 간사님: 신학이 언어를 통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면, 음악은 하나님을 조금 더 intimate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음악 자체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음악이 굳이 sacred genre가 아니더라도, 잘 준비된 masterwork을 통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적 기운이 흐르도록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특히 지휘하는 사람의 마음이 그러하면, 그 일이 가능하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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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 모두가 추구하는 자기 이익이 NYCP를 통해서는 보이질 않는다. 더욱이 기획부터 홍보, 펀드 유지 및 연주에 관련된 모든 일을 위해 간사님뿐 아니라 가족까지 이 일에 온통 뛰어들어 그토록 애쓰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지인들로부터 “너는 도대체 뭐 먹고 사냐?”라는 말을 들어가면서도 멈추지않고 오히려 더 이 일에 매진하게 만드는.. 간사님의 가슴을 뛰게하는 그 가치는 무엇일까? 많은 음악인들이 말하는 ‘나의 음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싶다’는 그 고백을 넘어서 포기할 수 없는 어떠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
김동민 간사님: “Free”라는 단어에는 두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첫번째는, 어떤 제품을 살 때 덤으로 끼어주는 sample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의미이겠구요. 두번째는, 무료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측량할 수 없는 것이죠. 예수님의 보혈의 가치가 바로 두번째 의미입니다. 내가 거저 받은 은혜에 대해 pay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그 free의 의미가 상실되어 버리고,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닌 것이죠. 저는 그 의미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작지만, 그저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양심에 부끄럽지않게 최선을 다해 음악을 준비하고, 거저 나눠주는 것이죠. 사람들은 그냥 오기만 하면 됩니다.
사도행전 3장에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 이야기가 있지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올라갈 때 그들의 눈에 앉은뱅이가 들어왔잖아요. 성경에서는 “주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그런데, 과연 그 길이 베드로와 요한이 처음 가던 길이었겠냐는거죠. 그리고, 앉은뱅이 역시 그날 처음 그곳에 앉아있지 않았구요. 구걸하기 위해 “날마다” 사람들이 그 앉은뱅이를 미문에 두었다고 말씀하지요. 성령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늘 지나치던 그 풍경 속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영혼의 필요를 볼 수 있었던 거죠.
저 역시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어떠한 동냥을 통한 경제적인 도움을 뛰어넘어서, 한 영혼이 더 이상 저주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존재로서 정체성이 회복되는 그 근본적인 변혁을 소망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 것처럼요. 그러기 위해서 저와 우리 NYCP 연주자들은 자신에게 함몰되어 좋은 연주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바탕으로하는 것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게 life changing moment를 허락하셨던, 인디애나에서 만났던 그 할아버지가 주신 교훈을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에요.



음악인에게는 모든 연주가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며 소중하지만, 그래도 그 중 가장 의미있고 기억에 남았던 때가 언제였는지 간사님께 여쭈어보았다.
김동민 간사님: 2011년 늦가을에 African-American community가 중심인 곳에서 연주를 했었어요.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연주회에 가서 프로그램에 싸인을 받아오는 것이 학교에서 추천한 하나의 after-school activity였는지 중고등 학생들이 청중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었지요. 연주 후 모두 흩어지는 분위기였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흑인 여학생이 멀찌기 서 있다가 제게 다가왔어요. 다른 학생들은 저희 단원 연주자들에게 싸인을 받았는데, 이 여학생은 제게 싸인을 받기위해 기다리고 있었더라구요. 싸인을 해 준 프로그램을 다시 받아들면서 “저는 태어나서 오늘 클래식 음악회에 처음 와 봤어요. 저희 동네에 와 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했을 때의 쑥스러우면서도 좋아서 발갛게 상기된 그 여학생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에겐 익숙한 클래식 음악이 그 누군가에겐 태어난 후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쿵...하는 것 같았다.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일상에서 넘쳐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 세상 그 누군가는 한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너무나 생소한 이야기일 수 있고, 어쩌면 그 생소한 복음조차 들어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칠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곧 이어졌다. 음악회를 가려면 왠지 잘 차려입어야고, high class는 아닐지라도 왠지 나는 그런 음악을 들을만한 사람이라는 높아진 마음이 내 안에 보였다.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 땅 가운데 있는 온 이방인들에게까지 구원자가 되어주신 예수님이 생각났다. 그 일에 증인이 되어 목숨까지 걸고 이방땅을 찾아 다니던 사도 바울이 떠올랐다. 김동민 간사님의 마음을 설레이게 했던 그 가치는 예수님께서 율법이 만든 구원의 한계를 십자가에서 깨쳐주셨던 것처럼, 선한 하나님의 영을 음악을 통해 흘러가게 함으로서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invisible boundary를 깨는 일을 하고 계셨다.
Come, all you who are thirsty,
Come to the waters;
And you who have no money,
Come, buy and eat!
Come, buy wine and milk
without money and without cost.
Isaiah 55:1 [NIV]
어떻게 돈 없이 포도주를 살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만일 어떤 상인이 포도주와 빵, 우유 등의 값을 0원으로 매겨 놓는다면, 그 일은 가능해진다. 필요한 자는 그저 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구원의 사역이 바로 이것이고, 아무런 대가없이 구원을 베푸시는 그분의 은혜와 사랑 앞에 우리는 그저 나아가면 된다.
하지만, 그 은혜로 사람들을 나아가게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찾아 내려가는 것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내 주위에 잃어버린 양은 없을까? 사실 잃어버린 양은 잃어버렸기에 표면상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찾고 또 찾을 때에만 그 “잃어버림”이 내 영혼의 눈에 “자각”되기 시작한다. 마치 베드로와 요한이 날마다 성전을 오를 때마다 앉은뱅이를 만났어도 그의 영혼의 필요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내 안에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내려가려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에만 그들에게 비로소 “주목”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
Not only being humbled Himself
But also being obedient to death, even death on the cross!
마음에 천천히 한땀씩 새겨 본 예.수.님.의. 마.음.이 내 안에서 낮고 더 낮게 흐를 수 있도록 그 어딘가로 마음을 뻗어 reaching out 해 본다. Not to be served but to se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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