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교지 여행을 마치고 - 김문희 (GU1 간사)    

"중국 선교"라고 부르기에는 왠지 모를 부담이었고, 단지 나는 “선교지로 여행을 떠난다”고 부르기로 했다. 사실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주러 가는것이 선교라면, 나는 처음부터 내가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받으러 가는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만큼 이 여행은 누구에게도 아닌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우울해 있었고 지쳐있었다. 하나님에게 “왜 그런 시간을 허락하셨냐”고 “그때는 어디 계셨냐고”, 또 “왜 가만히 계셨냐고”묻기도 했지만 묵묵히 계시기만 하고 대답을 주시지 않는것만 같았다. 그냥 “하나님의 뜻”이려니 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지쳐있었던 것 같다. 나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고 싶었다. 내게 익숙한 신앙 생활의 환경과 주변의 사람들을 떠나 아무도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었고,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인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한 시간이 없이는 계속해서 버티기가 힘이 들것 같았다. 나의 그러한 상태에 자책하는것도 힘이 들었다.어쩌면 그냥 놔두기에는 불안하셨던지, 여행을 준비하면서 내가 하나님의 계획을 앞서 가는거라면 여행을 막아달라는 기도에도 불구하고 내 중국행을 막지 않으셨다.

돌아와서 돌이켜보니 하나님께서 회복의 시간을 주시기 위해 나를 그곳으로 인도하셨던 것 같다. 사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그것도 왠지 모를 선입견이 있는 조선족 분들을 만나서 같이 잠도 자고 이리저리 따라다니면서 음식도 먹고, 때론 화장실도 없는 집에서 잠도 자고, 또 여러가지 대화도 나누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도대체 어디 계시냐”고 울부짖던 때에도 늘 그곳에 계셨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다. 하얼빈에서 초라한 지하 교회에서 울려퍼지는 아직도 공산주의 분위기가 느껴질만큼 다소 촌스러운 그러나 진실로 예수님을 찬양하는 모습에서도, 또 연길 돈화 지역의 농촌 교회 전도사님과 가족들과의 대화에서도, 또 소련-그들은 러시아를 아직도 그렇게 불렀다- 으로 돈벌러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혼자서 뱃속의 아기를 키우면서 교회를 섬기는 시골 언니와의 수다에서도, 중국 최고 대학 출신의 남편을 두고, 또 본인이 전직 회계사 출신으로 편안한 생활을 할만도 한데, 북경에서 캠퍼스 사역에 헌신해 -거기서는 CCC가 지하 조직이다- 손바닥만한 아파트에서 대학생들을 두명이나 데리고 살면서 남편의 월급을 몽창 학생들을 위해 쓰고 있는 분을 만나서도, 또 중간에 잠시 들른 연길시내 교회에서도 나는 눈물을 많이 흘렸다. “하나님 당신이 어떤 분이길래 이 사람들이 중국에서까지 이러고 있습니까”하는 나의 화두는 금새 “좋으신 하나님, 기도 들으시는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바뀌어 이었다.

연길시 외곽의 <사랑의 집> 고아원에서는 주로 몸으로 하는 일이 많았다. 워낙에 마음이 지쳐서 그것을 보상할만큼 몸이 힘들만한 곳으로 가야겠다며 찾은 곳이 고아원이었다. 아이들은 새벽부터 깨고, 건강하지도 않아서 숨도 잘 가누지 못한다. 똥오줌싸고 뭉개는 애들도 있고, 별로 도움이 안되는줄은 모르고 제가 쓴 요강을 굳이 같이 씻으러 가겠다는 애들도 있다. 뇌성마비때문에 몸이 말을 듣지 않지만 생각이나 마음은 멀쩡한데 아무도 자기한테 시선을 주지 않아 서운한 아이도 있고, 또 그중에도 성취욕이 강하고 능력이 있는 멋진 여장부도 있다. 심장병, 백내장, 또는 뇌가 머리 밖으로 나와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건강을 찾아가는 아이들.. 돌보는 손길이 부족해서 제대로 목을 가누고 앉아 있지도 못하는데도 식사 시간이면 삥 둘어앉아 제 밥은 제가 떠 먹는다. 물을 제대로 먹여 주는 사람이 없어서 한 녀석에게 물을 먹일라치며 2분안에 10명이 몰려들어 “나도 물~”한다. 으, 끔찍하게 귀여운 것들.. 때로는 그곳에서의 아이들과의 시간이 피곤하기도 해 혼자 책이라고 읽던지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다며 등을 돌리면 죽자 살자 울면서 따라붙는 한 녀석-밍밍-얼굴은 중국 만화에 나오는 애처럼 눈도 작도 머리는 크고 사실 별로 못생겼는데, 성취욕이 대단하고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세살박이 사내아이이다. 굳이 울면서 따라온다. “누나 같이가” 하면서.. ‘저러다 말겠지’ 해도 끈기 하나는 내 끈기에 맞먹는지라 정말로 끝까지 따라온다. 속으로 나는 “야, 누나는 무슨. 내가 첫사랑한테 시집을 갔으면 둘째가 너만했겠다”하면서 밍밍 손을 잡고 산책을 한다. 보통은 심각한 것이 없는 아이인데 내가 손을 잡고 기도를 할때는 뭔가 심상치 않은 심각한 분위기가 오고간다는 것을 알아채는 눈치도 빠른 녀석이다. “누나 따라갈래”하던 애. “누나 안아줘” 하던애.

그런 시간이었다. 잔잔한 시간이었다. 팀으로 간 선교단원들처럼 엄청난 기적을 보거나 큰 일을 한것은 아니였지만, 조용히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또 어린 아이들 기저귀를 갈고 마루 바닥을 닦고 죽어라고 안자는 애들 재우면서 .. 조용한 휴식을 통해서 그렇게 하나님은 나를 회복시키셨다. 그동안의 시간을 인정하신다는, 의인의 길을 지키신다는, 여태까지도 지키셨고, 앞으로도 그러하신다는 .. 확신으로 회복시켜 주셨다.

사람들이 중국 여행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면 별로 할말이 없다. 나는 많이 울었다는 것 밖에는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단지, 내가 갈때는 비행기에서부터, 아니 공항에서부터 눈물을 흘리고 떠났는데, 얼굴에 광채를 내면서 (?) 돌아왔다는 것 밖에는 할말이 없다 -물론 돈화 전도사님이 사주신 개고기도 한 몫 했겠지만-

시편 구절을 인용하면서 중국 여행 이야기를 마친다.

Answer me when I call to you,
O my righteous God.
Give me relief from my distress;
be merciful to me and hear my prayer. (Psalm 4:1)

. . . the LORD watches over the way of the righteous. (Psalm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