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받으라 - 제현수 (NOVA3 간사)


주옥자매님께서 '고난을 받으라'라는 주제로 제게 글을 요청하셨을때, 주옥자매님께서 속으로 아마 제가 WEST 수양회를 준비하면서 힘이 많이 들었을것이라 생각하시고, 부탁하신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 제 소개를 잊었군요. 저는 노바 3 간사로 있는 제현수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KBS에서 간사를 한지도 2년이 넘었네요.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잘못했던 옛일들이 생각나서 혼자 마음이 아프다가도 그 시간들속에 저를 놓지 않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을 볼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다보면, 고난을 받는것이 당연하다고 성경에 써있고, 역사적으로도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박해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성경공부를 준비하면서 제 마음을 찌르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래의 구절입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 2:19-20)

제 삶을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은것이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남에게 잘못을 해서 욕먹고, 매를 맞은적도 있고, 나의 욕심과 나의 만족을 위해서 무엇인가 추구하다가 하나님께 매를 맞은적도 있지만 말이죠. 나의 삶에서 과연 얼마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추구하면서 살았는가...... 한숨이 나오더군요.

수양회 전체 코디를 맡아달라고 추집사님께서 부탁하실때(뭐 다른분들께서 거절하셨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제게 부탁하셨죠), 추집사님의 글썽거리는 눈을 보고 거절할 수 없었죠. 또한 다른한편으로는 언제나 수양회 때마다 준비위원, 조장, 혹은 순서진행자를 맡았기때문에 어느정도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또 마음 한편으로는 결단의 시간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자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었구요. 그런데, 막상 준비를 시작해 보니, 제 생각과 계획대로 되는것이 그리 많지 않더군요. 또한 제 욕심엔 많은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는데, 참석인원이 예상보다 훨씬 적을것 같았습니다. 저는 불안했고, 초조했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단, 고민하고 사람들을 닥달했었습니다.

2주전이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는것이 무엇일까?' 조용히 질문했을때 하나님께서는 아래의 구절을 읽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 1:1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얼마나 크게, 얼마나 멋있게 수양회를 꾸미는것이 아니었고, 돌이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길 원하셨고 마음을 깨끗케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제게 맡겨주신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수양회를 준비하기 위해 모인 형제, 자매님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바쁜 중에도 열심히 수양회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시고, 또한 맡은 순서를 위해서 열심으로 수고하는 그들을 바라보았을때 저는 위안을 얻었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사탄의 방해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수양회 전주 저는 세번이나 가위에 눌렸고, 수양회 당일도 날씨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말씀을 전하시는 이일형 권사님께서도 말씀 준비기간 동안 너무도 많은 방해를 겪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준비한 모든 순서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단의 시간중 주님께서는 계속 제게 '나는 이 사람들을 사랑한다 '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WEST 수양회가 지난지 벌써 한달이 지났습니다.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려는 유혹과 매일 열심히 싸우고 있지만, '고난을 받으라'와 '어떻게 고난을 견딜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알게 된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고난을 받았던 이들은 고난보다 예수님을 사랑했었던것 같습니다. 나의 욕심보다도, 내가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는 욕망보다도 그들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더 큰것이 아니었을까요?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예수님보다 더 좋아보이는 것들이 유혹하고, 십자가의 길보다 아름다워 보이는 이 세상길에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