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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글
윤형선님은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Greensboro에서 캠퍼스 간사로 수고하고 계십니다.

"신약성경에는 '리더십 훈련'에 대한 말이 한마디도 없지요.
성경이 말하는 모든 훈련은, 누구를 만나든 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훈련이란 이끄는 법이 아니라 따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Jim Elliot- <전능자의 그늘/Shadow of the Almighty>중에서


얼마 전에 아끼는 친구에게서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내용은 28살의 젊은 나이에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살인부족인 에콰도르 아우카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려다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선교사 짐 엘리엇의 삶과 신앙에 대한 기록을 담은 것이었다. 그리고 친구는 위에 있는 구절을 잘 묵상하라는 지침도 내게 일러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리더십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이끄는 법에만 중점을 두었지 정작 따르는 법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리더의 모습을 배우고 따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챤들의 리더십이란 결국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인데 우리는 너무도 이 부분을 간과해오지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5:30)

일반 리더십을 말할 때 핵심되는 요소를 비전이라고 흔히 얘기한다. 리더가 올바른 뜻과 확고한 방향을 가지고 멤버(구성원)들과 꿈을 공유함으로 그가 가진 영향력으로 그들을 이끌어서 그 비전들을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처럼 영향력이 컸던 리더라도 잘못된 비전으로 자국의 국민들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듯이 리더의 비전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까지도 결정하게 된다.

위의 슬라이드는 이번 가을 수양회에서 리더십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사용했던 것이다.(일반 리더십을 Worldly Leadership이라고 표현했다)

일반 리더십의 중심축은 비전이다. 이 비전이 중심축을 이루어서 자신의 비전 성취를 위해서 모든 일에 적극성과 열정을 갖게되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근면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비전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때로는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참고 기다려야 되는 부분이 있게 되는데 이 경우 인내심이 리더십의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리고 인재 양성 또한 자신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해야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할 예수님의 리더십의 중심축은 "아버지의 뜻"이였다.

예수님은 자신의 어떤 비전도 내세우지 않으셨다. 오직 아버지 뜻에 따라 움직이셨고 이에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선포하셨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버지 뜻에 따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셨는가를 느낄 수 있다.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눅6:12~13)

세상적 시각으로 볼 때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너무나 부족해 보인다.
"아니, 예수께서 인류 구원이라는 큰 뜻을 이루셔야 되는데 어떻게 저런 형편없는 사람들을 제자로 뽑았을까! 과연 예수님은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지 몰랐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전에 많이 했었다.

개인적으로 베드로를 참 좋아하지만 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은 한마디로 "어이없음"이다. 나서기 좋아하고 뚱단지 같은 소리 잘하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참 답답하셨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런 제자들을 세우신 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이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우기 전, 아버지의 뜻을 알기 위해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물으셨고 그 뜻대로 그들을 세우셨다. 그리고 정말로 그들은 최후에 복음을 위해서 순교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누가복음22:42)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통해서 인류의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 뜻을 감당하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간절히 기도드렸고, 결국 십자가의 순종함을 통해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감당하셨다.


그렇다면 크리스챤 리더십의 중심축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혜대로 주신 이 땅에서의 소명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디모데후서 1:9)


이것이 바로 일반 리더십과 성경적 리더십을 구별짓는 큰 차이점이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24)

일반 리더십은 스스로 세운 비전에 따라서 자기가 중심되어서 모든 축이 회전하지만 크리스챤이 가져할 리더십은 자기가 세운 비전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소명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리더십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분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얻는 것에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근면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겸손히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고 소명 때문에 헌신하며, 자신의 비전 때문에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기다릴수 있는 믿음으로 바뀌며, 공동체나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삼아라"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해서 제자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명의 도착점은 결국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에 있다.

<소명>이라는 책에 나오는 오스 기니스의 표현에 의하면"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의 일차적 소명은 그분에 의한, 그분을 향한, 그분을 위한 것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넘어서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의 존귀함을 위해서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고백까지 이르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 4:20-21)


끝으로, 리더십에 대해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마무리 하려한다. 최근에 리더십에 대한 이슈를 보면 사회적인 하나의 유행처럼도 느껴진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회적인 현상에 맞물려 교회가 이 유행을 뒤쫓는 듯한 인상 또한 받는 것이 사실이다.

성경에는 분명 하나님이 부르신 리더들이 존재하지만, 세상에서 논해지는 리더십이나 리더십 훈련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 것 같다. 성경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일꾼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훈련을 받아서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리더십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굳이 리더십을 어떻게 배우냐고 질문한다면 성경 말씀에 뿌리를 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고난 당하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를 때 올바른 성경적 리더십을 배우리라 확신한다.

바로 이것을 위하여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여러분이 자기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고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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