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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야기
신희수님은 현재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마 5:5)

결혼 후 내게 더 각별해진 말씀이다. 결혼 전 나는 내가 꽤 온유한 사람인줄 알았다. 특별히 감정적으로 폭력적이거나 화를 내는 일은 거의 없었고 심지어 순둥이라고까지 불리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4살된 딸을 키우며 살림하는 나는 순간 순간 애써서 온유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새 분노하는 감정에 지배되어 버리고 만다.

무엇에 그리 화가 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매일매일 밥하고, 먹고 나면 치우고, 청소 빨래 며칠 걸러 하고, 아이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고, 아플까봐 늘 신경을 쓰며,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와 변덕스런 감정을 감당하며 쉽게 지친다. 특별히 살림과 교육에 욕심을 내지 않는데도 늘 일이 많아 지친다. 이런 일상이 화를 낼 일들인가 싶겠지만, 나만 반복되는 단순 노동에 퇴보하고 느려지는 것 같아 소심하게 되고 몸이 피곤하면 그 불평스런 마음이 터져 나와 괜한 화를 내는 모양이 된다. 사람들은 가정일 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고들 말하고 나도 절대 공감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치열하게 경쟁하는 풍조 속에서 눈에 띄는 발전이 없어 보이는 가정 일은 자꾸만 초라하고 작게 느껴진다. 그런 삶에 전념하는 주부인 나는 자연히 불만하는 감정에 빠지게 되고 자족하지 못하는 마음은 쉽게 폭력적인 감정으로 돌변하곤 한다.

또 빠질 수 없는 결혼 생활은 시댁 챙기기이다. 전혀 관계없는 남들이 가족으로 만나 진정 사랑하는 한 가족이 되려면 당연히 서로가 해야 하는 일이다. 이 또한 화를 내어서는 안될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의 정서가 시댁은 우선이고 친정은 뒷전이며, 나의 뜻과 감정이 상할지라도 어른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가정의 평화가 지켜지는 일이 허다하니 이 불합리함에 분노하게 된다. 결국 생각해 보면, 이 분노는 나의 발전을 위해 살지 못하고 나를 높이지 못하며 내가 우선할 수 없는 일상과 관습에 대한 불만인 셈이다.

그런데, 분노가 차오를 때 그것이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둔다고 그 분노가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분노는 해결되지 않고 상황은 악화되어 자책감에 빠지게 되고 무기력해지며 내가 파괴되는 경험을 한다.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사람이 행복하다 하셨으니 온유하지 못한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는 섭리인가보다. 자족하는 평온함으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조용히 세상을 바꿀 줄 아는 온유한 사람이어야 주님 나라 새 땅을 차지하고 그 활력을 넉넉히 누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온유하지 못한 자가 겪어야 하는 참담함을 말없이 강조하셨나보다.

내 존재를 내세우기에 급급하지 않는다면 주부의 일은 참으로 복된 일인 것 같다. 말 안 듣고 고집을 피워 내 속에 불을 지르는 내 아이를 참아보고 용서하면서 주님의 온유하신 인내심에 뼈져리게 감사하며 배울 수 있고, 내가 하찮아지고 약자가 되는 것에 눈물을 흘려보면서 그분의 겸손하신 순종을 애타게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순간 순간의 일상 속에서 나를 낮추고 나중 되게 할 줄 아는 온유를 배워가는 귀한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러한 일상의 훈련을 통해 먼저 사랑하고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참사랑을 조금씩 배워간다고 믿으며 그렇게 살아가기를 다짐한다. 나와 우리를 닮은 딸이 태어나 자라는 모습이 그저 뿌듯하고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울 때, 나를 더없이 아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감히 짐작해 보면서 희망을 얻고 다시 시작하기를 결심해본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 11:29-30)
라는 말씀에서 위안을 얻으면서.

내 존재를 내세우기에 급급하지 않는다면 주부의 일은 참으로 복된 일인 것 같다. 말 안 듣고 고집을 피워 내 속에 불을 지르는 내 아이를 참아보고 용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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