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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이끌림으로
 
양유리
양유리님은 전 AU 멤버이고 현재는 플로리다의 교회 청년부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고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제가 맞을 수 없는 채찍에 맞으셨으며 제가 쓸 수 없는 가시 면류관을 쓰셨고 제가 질 수 없는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성령께서는 미련한 저를 이끌어 주님 가까이로 가시고자 하신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부터 제가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지 그리 오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금요일 저녁 성경공부와 학교 공부할 시간을 잣대질 하며 갈까 말까 고민하던 한 성경공부 멤버를 어느새 한 그룹의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체험하며 “왜 제게 이런 자리를 허락하셨습니까”라고 질문할 때 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저의 생각과 계획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DC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처음으로 말씀을 듣고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 말씀들을 믿을 수 있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성경공부 멤버들에게 말씀을 아무리 많이 안다해도 한 구절도 믿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다고 강조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을 들은 적도 없는데 믿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읽는 것은 믿음이 생기는데 우선적인 필요 조건이라고 생각됩니다.

말씀을 단순히 듣고 읽는 것은 어느정도까지는 본인의 의지로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믿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말씀을 진정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전에 저는 성령님께서 제 가운데 계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제 안에 계시다는 것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늘 뭔지 모를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은 너무 신나고 즐거운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드릴 때면 이유없이 서럽게 눈물이 흘러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미련한 저라도 “내가 도대체 왜 이럴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사람의 사정을 그 영밖에는 다 알 수가 없다는 말씀을 들으며 “내 영이 서러운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영의 기도를 할 수 있도록 겸손한 마음으로 간구하라”는 말씀에 며칠을 고민하며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언으로 처음 기도를 하게 되면서 그동안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들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제 삶에 늘 함께 하셨다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늘 마음 속으로 아무리 회개한다고 해도 “내 죄를 정말 다 용서해 주실까”라고 의심했던 제 마음의 앙금도 깨끗히 쓸려 내려갔습니다. 그 전에도 성령께서는 제 안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저의 둔감함은 방언 기도를 하게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성령께서 제 안에 계심을 확신할 수 있게 했습니다.

방언은 여러가지 영적인 선물 중에 하나일 뿐, 모두가 같은 체험을 해야하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만 저는 이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성령께서 제 안에 계심을 깨달았고 신앙 생활에 박차를 가할 수있었다는 것을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아마도 이런 비유가 적절할 것 같습니다. 마치 같은 길을 가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로 갈아탄 듯한 느낌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있을 동안에는 내가 열심히 발을 굴려서 겨우 겨우 올라갈 수 있었던 언덕길이었는데 자동차로 갈아 타고 나니 한 쪽 다리로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만으로도 내 몸을 자동차에 의지해서 더 쉽게 더 빨리 그 언덕길을 올라갈 수 있게 된 듯합니다.

성령께 의지함은 믿음의 언덕길을 올라 가는데 필요없이 들였던 내 다리의 힘을 빼게 하고 내 능력 이상의 효과를 누리게 하는 믿음 생활의 비밀인 것 같습니다. 물론 자전거를 탄 사람보다 자동차를 탄 사람에게는 더 큰 책임감이 필요하고 주의가 요구되는 것처럼 초보자로써 저의 개인적인 짧은 체험을 나누는 일은 사실 조심스럽고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제 안에 계시다는 확신이 생긴 후 제게 나타난 두가지 큰 변화가 있다면 새벽기도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기쁘게 느껴졌다는 것과 말씀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저의 새벽기도는 억지로 억지로 누군가를 따라 가서한 20분을 채 기도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번 시도해 보았지만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저를 이끄심을 알게 된 후에는 새벽기도가 힘들지 않아졌습니다. 오늘도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께 얼른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 놀라워 하기도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전에 처음 내가 대화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 것이 감격스럽습니다. 이제는 나의 기쁨이 어디서 오는지도 나의 문제를 어디에 가서 누구와 풀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기쁨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께로부터 오고 문제는 역시 먼저 그분 앞으로 가지고 가야함을 느낍니다.

다음으로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수양회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쁘고 할 일도 많은데 왜 이 시점에 수양회에 다녀 오라고 나를 부르셨을까?” 내려오는 날까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사님과 대화를 하던 중에 제게 ‘유리야, 내가 너에게 주고 싶은 상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그래서 불렀다’ 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성령께서 히브리서 11장 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저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라는 구절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을 지키시기 때문에 믿음도 없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주시고 싶어도 상을 주실 수가 없으셨을 겁니다. 너무안타까우시니 제가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을 찾는 자리에 저를 데려다 놓으셨다는 것을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을 찾을 때 하늘에 상급을 쌓게 된다는 것을 믿게 된 후로는 어렵고 힘든 일이 맡겨질 때면 실은 더욱 기쁨이 넘칩니다.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느끼게 하시고 제가 드리는 정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사랑과 은혜를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이 살아서 제 삶의 태도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 자신, 혼란한 세상 가운데 초조한 삶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섬기는 성경공부를 향한 소망이 있다면 역시 한 영혼 한 영혼이 성령의 이끌림으로 그 믿음이 자라가고 삶이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했던 찬송가처럼 예수님을 믿는데 하루 하루 삶 속에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받은 증거 많다고 기뻐하며 찬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KBS를 통해 말씀을 전해 듣는 여러분 그리고 전하시는데 애쓰시는 여러분 모두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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