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ous Volumes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11
 
인도하시는 하나님
 
최종훈
최종훈님은 University of Maryland 모임에서 성경공부 하십니다.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 이다. <시편 139:10>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출애굽기 13:21>

제가 하나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이 곳 메릴랜드에 유학을 와서 KBS모임을 나가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그 당시엔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되어 가족, 친구들과 떨어진 외로움, 타지 생활 적응의 어려움으로 인한 부담감 등등 마음이 매우 불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단지 친구를 만나보고자, 또 힘든 유학생활에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전 한국에선 하나님을 전혀 몰랐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한국의 청년들이 그러하듯 편협한 광신자들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아니 단지 그렇게 모르고 관심 없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고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짜증을 부리고 비난하고 무시하는데 앞장섰습니다. 마치 지하철역의 도인들이나 여호아의 증인들 같은 사단을 대하듯이 가짜 종교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닫힌 마음과 심지어 미움, 증오로 가득 찬 제가 처음 성경공부에 나왔을 때, 저희 그룹의 식구들은 그런 제가 퍼 붇는 의심 어린 질문들을 끈기와 감싸 안는 마음으로 받아주었습니다. 물론 처음엔 그런 마음들도 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매주 나오고 또 나오면서 조금씩이나마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성경구절을 보고 ‘아 저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내가 간파해내야지’ 하는 교만한 마음으로 말씀을 공부하였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룹원들과 함께 말씀을 보면서 그러한 교만함은 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입식이 아닌 스스로 묵상하고 다 함께 토론하는 그룹의 공부 방식은 저 같은 상황에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기가 막히게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주입식으로 처음부터 진리를 받았다면 거부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말씀에 대해 열리던 마음에 하나님은 바로 진리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터 주셨습니다. 처음엔 그렇게 거북하던 찬양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어떤 대중가요보다 더 관심이 가게 되었고, 신비롭게도 어떤 찬양이라도 처음 들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따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씀과 찬양으로 제 척박했던 마음의 땅을 진리의 씨를 뿌릴만한 땅으로 갈아엎으셨던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제 마음에 여전히 믿음에 대해 긴가민가해서 망설이던 저를 아시고 바로 고난을 통해 눈뜨게 하셨습니다. 유학을 오면서 떨어지게 되어 힘들어지기 시작했던 한국에서의 인간관계의 상처로 제 유학생활은 걷잡을 수 없이 황폐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나마 하나님을 알기 위해 다져지려던 마음의 토양은 다시 딱딱하게 갈라진 황무지로 변하여 매일 마음속은 미움, 원망, 화, 후회, 정죄, 자기 연민 등으로 가득 차 공부도, 가족과의 연락도, 성경공부도 나가더라도 마음이 그 자리에 없는 공허한 상태로 지냈습니다. 매일 술과 담배에 찌들어 있었고 한때는 그런 제 자신이 너무나 괴로워 죽음을 결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 자신도 모르던 제 약하디 약한 마음을 알게 하시고 최악의 상황까지 간 뒤에 하나님께서는 제가 생각하기엔 너무나 극적인 순간에 바로 예수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수양회 자리에서, 여전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따라왔던 그 자리에서, 마음이 지쳐 기댈 곳을 기대해보고자 하는 마음에 갔던 그 자리에서 아버지께서는 친히 제 마음에 그 따듯함을 울려 주셨습니다. 토요일 저녁 기도의 시간, 아직도 기도를 이끄시던 집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누가복음 6:37>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7:4>

”용서하라”는 기도였습니다. “내가 네 죄를 용서하셨듯이 너도 형제 자매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도를 들고 기도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아버지께서 제 마음 안에 따스한 말씀으로 함께 하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모든 자기 비판과 미움, 원망을 내려 놓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게 눈물 속에서 제 교만과 온갖 세상의 것들이 부셔짐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울고 기도하며 아버지 안에서 비로소 자유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여전히 마음속에선 세상의 때가 많이 남아있고 여전히 세상의 것을 좇아다니며 사랑도 부족하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도 가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한가지 다시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지금껏 그래왔듯 아버지께서는 분명 저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과정에 있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어둡고 두렵고 꾸불꾸불한 길을 걷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언제나 아버지께서는 저를 위해 예비하신 멋진 계획대로 제 손을 붙잡고 이끄실 것입니다. 때론 순간 “하나님께서 나에게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왜 이런 유혹에 시달리게 하시는지” 괴롭고 또 힘들기도 하지만 그 고난가운데 인내하며 아버지께 나아갈 때 참된 열매를 맺으리라 믿음과 기대를 주시는 하나님께 동시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지으시고 계획하시고 지금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으로의 삶도 이끄실 것이기에 아버지 안에서 담대히 또 어떤 고난에서도 꿋꿋이 설 수 있음에 정녕 하나님 안에서 인내하며 기쁘고 자유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3-4>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고린도후서 1:5>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