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향  (헨리 나우웬)
     오세종 (천안 KBS 간사)

소명 (오스 기니스)
    
김보경 (PCKBS 간사)


내게 있는것 (이재철 목사님)
     손호준 (UVA KBS 간사)

안식의 여정 (헨리 나우웬)
     임현식 (GU1 간사)

묵시: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유진 피터슨)
     임성우(GWU2 간사)


    
이일형 (KBS 대표간사)

큐티 나눔
     김예수 (AU2 코디)

2003년 가을 수양회를 돌아보며
     유일수 (UM2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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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 (홍병룡 옮김): 묵시: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 (IVP, 2002)
Reversed Thunder: The Revelation of John and the Praying Imagination, Eugene Peterson

임성우(GW2 간사)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은 나에게는 굉장한 거리감이 있었다. 요한계시록은 왠지 나이가 많이 들었을때에야 봐야될 것 같았고,멸망과 심판의 내용 때문에 섬찟한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20대 후반이 되었을때 접하게 된 유진 피터슨의 요한계시록에 대한 책, “묵시: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 또한 그렇게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다.

선입관에 사로잡힌 나에게 저자는 서문에서 도전하였다. “요한계시록을 읽고도 나의 상상력이 꿈틀대지 않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 . . 요한의 묵시적 환상은 나의 감각과 몸과 영혼을 새롭게 소생시킨다.” 난해함과 환상의 그늘을 거두어 줄 것이라는 호기심과 기대 속에 책을 읽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요한 계시록을 읽는데 많은 자신감과 기쁨이 생겼다. 이 책이 주장하고 제안하는 것을 정리해보면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질 수 있는데 내 오해를 풀어주는데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

첫째는 다른 성경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관점을 가지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묵시이자 시이기 때문에, 복음서나 서신서를 읽는 관점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시를 글자 그래도 읽는 사람은 절대로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도 같은 태도가 적용된다고 한다. “시는 객관적인 해설의 언어가 아니라 상상의 언어다.” 요한계시록은 뛰어난 시인 요한이 “오감에 지성과 감성까지 동원하여 상상력”을 더하여 쓴 하나님의 말씀이다. 자칫잘못하면 한갓 김빠진 문자로 전락해버릴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계시록에서 생동감있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천둥소리와 총천연색의 괴물, 장엄한 모습의 그리스도, 귀중한 보석들, 기도를 비유한 향을 담은 향로 등 요한계시록은 온갓 감각적 언어들로 충만하다. 이렇게 감각적인 언어가 사용된 것에 대해 유진 피터슨은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오감이 작동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에 대하여 지적으로만이 아니라 전 인격적으로 반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환상의 중요성이다. 기괴한 동물들, 예수님의 모습, 천사, 그리고 사단과의 전쟁, 마치 요한계시록은 fantasy소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환상은 요한계시록을 쓰고 있는 사도요한의 상황과 당시의 교회가 처하고 있는 배경과 연관지어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사도요한이 환상을 보았던 곳은 그가 유배된 밧모섬이었다. 그는 갇힌 몸이었고,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교회는 가난하고 칙칙한 곳이었고, 복음은 로마의 악을 멈추기엔 역부족이었다. “복음은 두세대를 지나며 신빙성을 잃었다.” 이러한 상황 속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묘사가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같으며, 그 오른속에 일곱별을 쥐고 있다. 그 위엄은 천둥처럼 장엄하다. 찬란하고 위엄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됨으로 (글자가 아닌 오감과 상상력으로 더 생생하게) 세상의 세력앞에 패배하여 갇힌 사도요한은 다시 능력을 얻고, 새로운 희망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혼란스럽고 온전치 못한 교회에게도 같은 맥락의 메세지이다. 교회에게 사도요한은 지리한 분석과 책망이 아니라, “비전과 소망과 격려”를 주고 있다.교회의 부족한 모습을 수용하며,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단도직입적인 가르침”이 덧붙여진다.

세째는 온전한 예배에 대한 환상, 그리고 소망이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크리스챤은 많은 경우 힘과 돈의 세력 앞에 무기력할 때가 많이 있다. 더 심한경우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핍박과 죽음도 각오해야 한다. 이러한 불의에 대해 하나님은 과연 침묵하시는걸까? 그 고통과 답답함의 부르짖음에 대해 요한계시록은 예배를 그 답안으로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인해 이미 패배한 용 (사단)은 바다와 땅에서 각각 한 짐승을 얻어 믿음의 공동체를 무너뜨리려 한다. 외부에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닥치는 가장 큰 악은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다. 그들이 내부에서 직면하는 최대 악은 예배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심판은 더 이상 개인적인 불만을 처리하는 문제가 아니다.가장 완벽하고 핵심이 되는 심판은 예배를 방해하는 큰 창녀를 멸하는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온 성도들이 겸손함과 기쁨의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를 구속하신 어린양에 대해 반응하며 우리가 예배할 때, 그 분의 역사의 통로가 활짝 열리게 된다. 그분이 인정받으며 그분의 일하심가운데 우리 성도들은 겸손함으로 영광된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요한계시록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묵시와 환상을 나의 짧은 지식으로 보려고 하길 포기했다. 오히려, 오감과 상상령을 사용하여 요한계시록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럴때, 세상적인 시야로 예수님을 이해하려고 하고, 그런식으로 세상을 살려는 나의 인식의 한계가 넓어짐을 깨닫게 된다. 영적인 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영적인 세계를 인식하게 됨을 통해 문제를 넘어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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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Bible Study 무화과 나무아래 2004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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